가사와 번역

새로 쓰는 계절

A Season We Write

빈 한 장
검은 먹 한 방울

오래 바라보다
나는 처음으로
내 손으로 적어

왕관은 다시 머리 위에
궁의 문도 그대로인데
어제와 같은 복도를 걸어도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야

살지 않은 삶도 기억하고
없던 계절도 품고 있어
어느 쪽이 진짜냐 묻는 대신
모두 내 안에 두기로 해

누군가 남긴 한 줄 끝에
내 손끝이 조용히 닿아

기다리던 빈자리 위로
새로운 먹빛이 번져 가

새로 쓰는 계절
내 손끝에서 시작돼
없던 길도 이름 없이
한 줄 따라 이어져

새로 쓰는 계절
너의 숨도 이어지게
기억하지 못한 날까지
우리가 다시 써 내려가

한 줄
한 숨
한 사람

또 한 줄
또 한 삶
또 한 계절

처음부터 정답은 없었어
완성된 이야기도 없었어
누군가는 비를 남겨 두고
누군가는 봄을 이어 썼어

나는 오늘 무엇을 남길까
왕궁의 이름도 아닌 말
누구의 것이 될지 몰라도
읽는 사람에게 닿을 한 줄

등록하지 마
봉인하지 마
끝이라고 이름 붙이지 마

손이 바뀌면
박자가 바뀌고
한 줄이 또 다른 길을 만들잖아

장단은 흐르고
회로는 이어져
오래된 숨과 새로운 신호

과거를 복사하는 게 아냐
다음 사람이 이어 쓰는 거야

전통은 멈춘 모양이 아냐
계속 변하며 살아 있는 것

그러니 비워 둬
한 칸쯤은

다음 손을 위해

내가 찾던 시인은 없지만
이제 그 이유를 알고 있어

이름보다 오래 남는 것은
다음 사람에게 건넨 자리

새로 쓰는 계절
내 손끝에서 시작돼
없던 길도 이름 없이
한 줄 따라 이어져

새로 쓰는 계절
너의 숨도 이어지게
기억하지 못한 날까지
우리가 다시 써 내려가

나는 마지막 줄에
내 이름을 쓰지 않아

대신 작은 문장 하나

“여기서부터
당신의 계절”

그리고 붓을 내려놔

한 줄
한 숨
한 사람

한 장
한 길
한 계절

이어져
이어져
이어져

새로 쓰는 계절
우리 손에서 시작돼
없던 날도 오지 않은 봄도
한 줄 따라 살아나

새로 쓰는 계절
끝이 아니라 이어짐
누군가 이 페이지를 열면
다시 새로운 길이 돼

새로 쓰는 계절
기억보다 멀리 가
쓰이지 않은 내일들을
우리 손으로 써 내려가

한 줄을 남겨

그리고

한 칸을 비워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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