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엽전 소리가 났다
하나
둘
셋
나는
그 소리만큼이었다
수레 뒤를 따라 걸었다
주인이 바뀌었을 뿐
걸음은 같았다
장터에서 장터로
먼지에서 먼지로
그들은 쇠를 치고
탈을 쓰고
줄 위를 걸었다
나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도 묻지 않았다
밤이면 누가
내 손에 쇠를 쥐여 주었다
"쳐 봐라."
틀리게 쳤다
다시 쳤다
또 틀렸다
반듯하게 치는 법은
아무도 가르치지 않았다
첫 판이 서던 날
누가 내게 탈을 내밀었다
양반탈
웃는 눈
늘어진 턱
높이 든 얼굴
나는 그 얼굴을 알았다
평생 보고 자란 얼굴
한참을 들고 있다가
썼다
탈 안에서는
내 숨소리만 들렸다
쇠가 울면
판이 열리고
탈을 쓰면
입이 열린다
웃어라
얼씨구
웃어라
좋다
웃는 동안은
아무도 나를 못 잡는다
나는 걸었다
아버지처럼
턱을 들고
소매를 털고
헛기침 한 번
대감님 오신다
길을 비켜라
먼저 웃을 사람 앞에서
먼저 웃어라
누가 소리쳤다
"한 번 더!"
그날 밤과
같은 말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정한다
역적과 손을 잡고—
나라를 어지럽혔다—
그 죄가 무거우니
엄히 다스리소서!
글로 쓰면
사람이 죽고
노래로 하면
사람이 웃는다
양반의 아들일 때
나는 말을 가려야 했다
누구 앞에선 줄이고
누구 앞에선 삼키고
탈을 쓰니
가릴 것이 없었다
대감의 걸음
벼슬아치의 거짓
붓 한 자루로
사람을 지우는 법
다 말했다
다 웃었다
아무도
나를 잡지 못했다
쇠가 울면
판이 열리고
탈을 쓰면
입이 열린다
웃어라
얼씨구
웃어라
좋다
웃는 동안은
아무도 나를 못 잡는다
판이 끝나고
누가 물었다
"이름이 뭐냐."
나는 이름을 말했다
"성은?"
"없습니다."
그날부터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불렀다
탈쇠!
글에는 주인이 있다
노래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