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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장: 광대 · TRACK 3

역적의 아들

SON OF A TRAITOR

앨범 0장: 광대 · 3번 트랙  ·  탈쇠 인물 소개 →

집은 몰수되고 식구들은 흩어졌다. 관청 문서를 베껴 쓰던 소년은 이제 남의 집에서 물을 긷는다. 술에 취한 손님들이 아비가 어떻게 걸었는지 보여 보라고 할 때까지.

대문 위에
종이가 붙었다
집은
나라의 것이 되었다

책은 마당에 쌓였다
붓은 부러졌다
벼루는 누가 들고 갔다
어머니의 비녀
할아버지의 족자
내 이름이 적힌 책
하나씩
다른 사람의 손으로
식구들은 흩어졌다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나이가 어려
목숨만 남았다

목숨만
남았다
이름도
남았다
그게
더 무거웠다

역적의 아들
역적의 아들
허리를 굽혀라
허리를 굽혀라
역적의 아들
역적의 아들
고개를 숙여라
고개를 숙여라
배운 것은 잊어라
여기선 쓸 데 없다

새벽보다 먼저 일어나
물을 긷고
장작을 패고
마당을 쓸었다
손바닥이 갈라졌다
붓을 쥐던 손
누가 부르면
"예."
누가 때리면
"예."
말을 가려 쓰던 입으로
"예" 한 마디만
글을 안다는 것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떤 밤은
아버지가 미웠다
그 사람 이름 위에
붓을 댄 손
어떤 밤은
그 손이 그리웠다
내 틀린 글자를
짚어 주던 손
미움과 그리움이
한 이불 아래 누웠다

그 집에 손님이 든 날
술이 돌고
누가 나를 가리켰다
"저놈이 누구 아들인지 아느냐."
웃음이 터졌다
"네 아비가 어떻게 걸었는지
한번 보여 보아라."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못 하겠느냐?"
발길이 날아왔다

나는 허리를 폈다
턱을 조금 들고
소매를 가다듬고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반듯하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아버지의 헛기침
대감들의 눈짓
낮은 목소리로 사람을 부르는 법
먼저 웃어야 할 사람 앞에서
먼저 웃는 법

역적의 아들
한 번 더
역적의 아들
한 번 더
(crowd chanting and laughing) 한 번 더!

모두가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런데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너무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