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두 잔
세 잔이면 손이 안 떨려
주막 구석, 혼자 앉은 자리
옆자리는 항상 비어 있지
사람들은 내 손을 봐, 눈은 안 봐
막걸리 세 사발, 그래야 칼이 가벼워
오늘은 둘, 어제는 하나
이름은 몰라, 알 필요 없어
사또 도장 찍힌 종이 한 장
그게 다야, 그게 내 일이야
망나니 —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망나니 — 내 아비도 그랬지
칼은 무겁고 술은 가볍고
밤은 길고 — 이름은 없어
어릴 땐 나도 서당에 갔어
하늘 천 땅 지, 다 외웠어
근데 백정 아들은 글이 소용없대
그래서 아비 칼을 받았어
장터에서 애들이 돌을 던져
엄마들이 애들 눈을 가려
근데 저 양반, 저 사또, 저 부자들
밤엔 나한테 술을 보내지
고맙다고, 조용히 하라고
난 안 죽였어
종이가 죽였어
도장이 죽였어
난 그냥 — 손이야
망나니 —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
망나니 — 내 아비도 그랬지
칼은 무겁고 술은 가볍고
밤은 길고 — 이름은 없어
내일 또 종이 한 장
내일 또 세 사발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그게 왜 나냐고 묻지 마
주막 문 열고 나가면
사람들이 길을 비켜
왕보다 빨리 길이 열려
그게 내 유일한 양반 대접
한 잔
두 잔
세 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