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말씀 계속하세요
저는 찻잔만 치우러 왔어요
(달그락)
아무것도 못 들었죠
상 차려라, 물 떠 와라, 문 닫아라
하루 종일 불러 대도 이름은 몰라
고개 숙인 계집종은 귀도 없는 줄
내 앞에서 못 할 말도 참 잘하셔
벼슬 하나 오가는 데 논이 몇 마지기
찻물 식는 줄도 모르고 나누는 얘기
장부에는 없는 돈이 상 밑으로 가
나는 엎질러진 술을 닦고 나와
비단 소매 걷으시며 청렴을 말해
방금 받은 돈 냄새가 소매에 남네
마루는 닦으면 돼, 얼룩이야 지워
한번 들은 말은 어찌 씻어 버려
눈은 낮게
귀는 밝게
입은 무겁게
값은 높게
(쉿—)
벽에도 귀가 있어 — (누가 들어?)
문틈에 밤이 있어 — (누가 숨어?)
상 위에는 찻잔, 상 아래엔 돈
고개 숙인 내 앞으로 다 오가는 걸
말 한마디, 쌀 한 가마
입 다무는 값은 따로 받아
쉿— 목소리를 낮춰
듣는 귀가 나 하나일까
빨래터 돌 위에서 방망이를 쳐
어젯밤 그 이름을 물소리에 섞어
건넛집 몸종이 슬쩍 손을 멈춰
나는 젖은 소맷자락 한 번 더 접어
"그 얘기는 어디 가서 하지 마"
그 말을 붙여 줘야 멀리 가더라
사흘 뒤에 뒤뜰로 쌀 한 가마 와
누가 보냈느냐니 그냥 웃고 가
처음에는 어머니 약값이면 됐지
다음에는 겨울 나실 솜이불 한 채
이제 와서 모른 척 돌아가긴 늦어
내가 잠잠하면 저쪽이 더 급해
벽에도 귀가 있어 — (누가 들어?)
문틈에 밤이 있어 — (누가 숨어?)
상 위에는 찻잔, 상 아래엔 돈
고개 숙인 내 앞으로 다 오가는 걸
말 한마디, 쌀 한 가마
입 다무는 값은 따로 받아
쉿— 목소리를 낮춰
듣는 귀가 나 하나일까
오늘은 나리께서 날 따로 부르셔
문부터 닫으라며 자리까지 주셔
늘 서 있던 방에 처음 앉아 보니
사람 보는 높이가 제법 달라지네
"이 집 말을 파는 것이 누구냐
넌 구석구석 다니니 알 것 아니냐"
치마 끝을 여미고 눈을 내려 깔아
웃음부터 삼킨 뒤에 천천히 대답해
"찾아야지요, 집안이 걸린 일인데
허나 빈손으로 물으면 다들 입을 닫는데"
나리 손이 품속으로 바쁘게 들어가
묵직한 돈주머니 내 앞으로 밀려와
나를 잡을 돈으로 내 겨울을 나겠네
고개 한 번 숙였더니 믿을 사람이라네
"네가 이 집에서 제일 말이 없어"
예, 나리, 그래서 여태 모르셨죠
문을 열고 나오니 또 나를 불러 세워
"오늘 나눈 얘기는 너만 알고 있어"
돈주머니 여미면서 고개를 끄덕여
내 입이 무거운 데는 다 까닭이 있죠
벽에도 귀가 있어 — (누가 들어?)
문틈에 밤이 있어 — (누가 숨어?)
상 위에는 찻잔, 상 아래엔 돈
고개 숙인 내 앞으로 다 오가는 걸
찾는 값은 먼저 받아
입 다무는 값은 따로 받아
쉿— 목소리를 낮춰
듣는 귀가 나 하나일까
예, 나리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요
(달그락)
아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