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종이

아홉 개의 손 · 육백 년

이 이야기에서 아무도 이것을 지키려고 나서지 않습니다. 저마다 잠시 들고 있다가 넘길 뿐이고, 가장 오래 안전했던 때는 소금에 묻혀 아무도 그 자리를 기억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1. 01

    어느 서기의 손한 해

    누군가 이 장부를 썼다. 거짓 증언을 산 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치른 값과, 관의 도장. 그 손이 누구의 손이었는지는 이야기 안에서 끝내 밝혀지지 않는다.

    제4장

  2. 02

    바다십 년

    배가 북쪽 여울에 가라앉는다. 장부는 갈라진 뱃전 안에서 소금물에 잠긴 채 십 년을 있는다. 소금이 종이의 절반을 먹고, 절반을 지켜낸다.

    제5장

  3. 03

    옥이반나절

    해녀가 빗창을 두고 내려간다. 오늘은 캐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받으러 가는 것이니까. 그녀는 그것을 배 위로 올리고, 뭍으로는 가지 않는다.

    제5장

  4. 04

    수겸두 달

    글을 아는 사람이 필요했다. 유배 온 선비가 젖은 종이를 펴고 사흘을 읽는다. 그리고 자기가 왜 이 섬에 왔는지 알게 된다.

    제5장

  5. 05

    배쇠한 해 남짓

    밀수꾼이 그것을 품에 넣고 북으로 걷는다. 전장에서도 품에 있었다. 왕 앞에서도 품에 있었다. 두 걸음만 가면 되는데 — 손을 뺐고, 빈 손이었다.

    제8장

  6. 06

    분이하루

    그가 그것을 그녀에게 준다. 언제까지 지키겠느냐 묻자, 물을 사람이 생길 때까지, 한다. 그리고 그녀는 하루 만에 그것을 넘긴다.

    제8장

  7. 07

    병졸육십 년

    스무 살이라서. 오래 살 것 같아서. 무엇이냐 묻지 말라 하였다. 그는 글을 몰라 읽지 못했고 — 못 읽어서 지켰다.

    제9장

  8. 08

    소금 항아리오백 년

    어머니의 부엌. 소금을 반쯤 덜어내고, 기름천을 밑에 놓고, 그 위에 소금을 다시 덮었다. 집이 사라지고 부엌이 사라지고 밭도 사라진 뒤에도, 항아리는 그 자리에 있었다.

    제9장

  9. 09

    장갑 낀 손오늘

    누군가 그 부엌 자리를 판다. 손이 종이 위에서 멈춘다 — 오백 년 전에도 손이 멈춘 자리다. 그때는 빈 손으로 나왔고, 그것이 옳았다. 오늘은 다르다.

    제9장

불은 태우고 · 소금은 지키고 · 쇠는 기억하고 · 사람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