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수는 사흘 전부터 무릎이 쑤셨다.
하늘은 맑았다. 바람도 없었다. 포구의 젊은 뱃놈들은 그물을 널어놓고 볕을 쬐고 있었다.
갑수가 내려가 말했다. 배를 묶어라. 그물을 걷어라.
젊은 놈 하나가 웃었다. 하늘이 이리 맑은데 노인장.
갑수는 대답 대신 하늘을 보았다. 저녁이면 알게 될 것이다.
사십 년을 배를 탄 무릎은 하늘보다 먼저 안다. 그러나 무릎을 믿는 사람은 무릎을 가진 사람뿐이다.
한낮에 하늘이 먹빛이 되었다.
먹빛이라는 말을 갑수는 그때 처음 썼다. 그전까지 하늘은 흐리거나 어둡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의 하늘은 그 둘이 아니었다. 무언가가 하늘 위에 갈려 있는 것 같았다.
파도가 돌담을 넘어왔다. 지붕이 날았다. 서까래가 우는 소리를 갑수는 들었다.
사람들이 산으로 뛰었다.
갑수는 마루에 앉아 문을 열어두었다.
도망칠 것이 있는 자들이나 뛰는 법이다.
바다가 이빨을 드러내는 것을 그는 보았다. 사십 년을 알고 지낸 바다였다. 무섭지 않았다. 잃을 것은 십 년 전에 다 잃었다.
폭풍의 한가운데서 갑수는 바다에게 말했다.
소리치지 않았다. 조용히 말했다.
"십 년 전 그 밤에 내 아들을 데려갔지."
"그 밤에 배 한 척도 같이 가라앉았지."
"무슨 배였는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물어도 파도 소리뿐이었으니."
"오늘은 묻지 않겠다."
"다만 한 가지만 하여라."
"가져갈 것이 있으면 나를 가져가고, 돌려줄 것이 있으면 이제는 돌려주어라."
바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새벽에 폭풍이 지나갔다. 하늘이 씻은 듯 맑았고 물은 잔잔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갑수는 알았다. 바닥이 뒤집혔다.
배쇠가 물길을 살피러 나간 것은 그다음 날 새벽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바다는 전과 같지 않다. 여울의 모래가 자리를 옮기고 물살의 방향이 바뀐다. 밀수꾼에게 물길은 목숨이므로, 그는 무엇보다 먼저 그것을 다시 읽어야 했다.
낯익은 바위가 낯선 곳에 서 있었다. 배쇠는 노를 저으며 그것들을 하나씩 다시 외웠다.
그리고 썰물의 끝에서 그것을 보았다.
물 위로 솟은 검은 뱃머리 하나.
배쇠는 노를 멈췄다. 한참을 멈춘 채로 있었다.
십 년을 소문으로만 듣던 그 배가 거기 있었다. 나를 기다린 것처럼.
가까이 저어갔다. 심장이 장구보다 빠르게 뛰었다.
갈라진 뱃전에 관의 낙인이 있었다. 부러진 돛대에 해초가 자라 있었다.
배쇠는 그 자리에 앉아 오래 그것을 보았다.
십 년 전 그 밤, 이 배가 가라앉을 때 늙은 어부의 큰아들도 그 물에 있었다. 그리고 어젯밤, 그 노인이 폭풍 속에서 바다에게 무어라 빌었다는 말을 배쇠는 들었다. 돌려줄 것이 있으면 돌려달라고.
바다가 대답한 것이다. 이 뱃머리가 그 대답이다.
배쇠는 평생 모르는 척하며 살았다. 아는 것이 많으면 오래 못 사니까.
그런데 노가 멈추지 않았다. 뱃머리가 자꾸 그리로 돌았다.
저 밑에 무엇이 있는지 그는 알았다. 관의 문서, 그리고 사람의 뼈.
그는 잠수를 하지 못한다. 뭍의 사내니까.
그러나 물질하는 처녀 하나를 안다. 숨비소리가 유난히 맑은 처녀. 바다 밑을 제 마당처럼 아는 처녀.
옥이는 사흘을 대답하지 않았다.
배쇠가 찾아와 말했을 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 배를 본 사람은 그녀였다. 여름에 이미 보았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사흘째 되는 날 그녀는 물었다.
"그 안에 무엇이 있소."
"관의 문서요."
"그것뿐이오."
배쇠가 잠시 말이 없었다.
"사람의 뼈도 있소."
옥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잠들지 못했다. 바다는 그녀에게 늘 너그러웠다. 숨을 캐고 전복을 캐도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죽은 자의 곁을 파헤치면, 바다가 나를 용서하겠소.
궤짝은 무겁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무엇이든 가볍다. 옥이는 그것을 안고 올라와 뭍에 내려놓았다. 소금에 전 나무 냄새가 났다. 십 년 동안 바다 밑에 있던 냄새였다.
선비의 초가 앞에 그것을 내려놓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글을 모르오. 읽어주시오."
"어찌하여."
"바다 밑에서 안고 올라온 것이니, 무엇을 안고 왔는지 알아야겠소."
수겸이 궤짝을 열었다.
소금이 문서의 반을 먹었다.
남은 반이 수겸의 손을 떨게 했다.
승정원의 도장이 있었다. 사관의 필체가 있었다. 십 년 전 봉기가 있던 그 해의 기록이었다 — 조정이 감추고 싶었던 기록들.
거짓 증언을 산 자들의 이름. 사람을 엮어 죽인 자들의 장부.
수겸은 그것을 읽다가 붓을 놓고 일어섰다.
문을 열고 밤바다를 보았다.
내가 왜 이 섬에 왔는지 이제 안다.
진실을 써서 유배 온 것이 아니었다. 진실이 묻힌 곳으로 보내진 것이었다.
그를 지운 손과 이 배를 가라앉힌 손이 같은 손이었다. 같은 도장이었다.
그들은 그를 세상 끝으로 던졌다. 그런데 세상 끝에 그들의 죄가 기다리고 있었다.
옥이가 물었다.
"죽은 자의 곁을 파헤치면 바다가 나를 용서하겠소."
수겸은 한참 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늙은 어부는 아들이 왜 죽었는지 십 년을 모르고 살았소."
"그 뼈들이 기다리는 것은 고요가 아니오."
"이름이오."
옥이는 오래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이름이라 하였소."
"그럼 새벽 물때에 내려가겠소."
빗창은 두고 갔다.
오늘은 캐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받으러 가는 것이니.
갈라진 뱃전 사이로 들어가면 해초가 문발처럼 드리워 있었다. 그 안쪽에 그들이 있었다. 파도에도 떠나지 않은 사람들. 열두 사람이었다.
누군가의 큰아들이 거기 있었다. 십 년을 기다린 아들이 거기 있었다.
옥이는 손끝으로 나무를 두드렸다.
"왔소. 이제 왔소."
그리고 어머니가 부르던 노래를 속으로 불렀다. 이어도 사나, 이어도 사나. 가서 돌아오지 않는 섬의 이름이었다. 그들이 갔어야 할 곳의 이름이었다.
"나는 도둑이 아니오. 나는 손님이오."
"그대들의 이름을 데리러 왔소."
숨이 다했다. 빛을 향해 올라갔다.
물 위로 숨이 터졌다.
휘이 —
뭍에서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셋이었다. 배에 앉아 기다리던 밀수꾼, 초가 앞에 서 있던 선비, 그리고 바닷가에 앉아 있던 늙은 어부.
갑수는 그 소리를 듣고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살았구나. 오늘도 살았구나.
그는 아직 몰랐다. 그날 물 위로 올라온 것이 그 여자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오늘은 나만 올라온 것이 아니다.
그 말을 옥이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다만 뭍에 오르며 늙은 어부 쪽을 한 번 보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