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 년 · 아홉 장
이야기는 육백 년에 걸쳐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일어나고, 그 뒤로는 종이가 기다립니다.
제1장
궁궐 정치에 밀려, 실록에 이름 한 줄 남지 못한 채로. 온화했던 왕은 그 뒤로 폭군이 된다. 상소문에 도장 대신 피를 찍는다.
제2장
진실을 썼다는 죄로. 그의 글이 광대 탈쇠의 노래가 되고, 그 노래가 백성의 함성이 된다. 봉기는 반나절을 넘기지 못한다.
제3장
그의 마지막 글 한 장이 어느 마루 밑에 남는다. 사십 년 동안 아무도 꺼내지 않는다.
열여섯 살. 마루 밑을 청소하다가. 사흘을 훈장 문 앞에 앉아 글을 배운다.
제4장
북쪽 여울에서. 안에는 관의 문서와 열두 사람의 뼈가 있다. 거짓 증언을 산 자들의 이름이 적힌 장부와 함께.
선비, 밀수꾼 배쇠, 늙은 어부 갑수, 해녀 옥이. 육지가 끝나는 곳에서.
제5장
폭풍이 바닥을 뒤집은 뒤. 빗창을 두고 내려간다 — 오늘은 캐러 가는 것이 아니라 받으러 가는 것이니까.
제6장
옥이는 바다 한가운데서 물로 돌아간다. 남은 셋은 속리산에서 정안을 찾아낸다.
제7장
여진이 압록을 건너고 성 셋이 사흘 만에 무너진다. 나라는 죄인을 사면한다. 배쇠는 장부를 품에 넣은 채 돛을 내리고 북으로 걷는다.
마흔넷. 종이와 먹만 지고. 죽는 사람의 이름을 죽는 날에 적기 위해.
제8장
전투가 끝난 아침. 품에 손을 넣었다가 빈 손으로 뺀다. 분이가 그를 말린다.
언제까지 지키겠느냐 묻자 — 물을 사람이 생길 때까지.
제9장
스무 살이라서. 오래 살 것 같아서. 무엇이냐 묻지 말라 하였다.
언 밭에서. 돌인 줄 알았는데 돌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부엌. 글을 몰라 읽지 못했고, 못 읽어서 지켰다.
육십 년 뒤. 할아버지, 그 종이 어디 있어요. — 기억이 안 난다, 하신다.
오백 년 뒤. 소금은 상하지 않았다. 봉인은 그대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