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고 한다.
무엇을 받느냐 물었더니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땅이 아직 얼어 있다. 삽이 들어가다 만다. 두 해를 안 갈았으니 굳었고, 굳은 것을 푸는 데 사흘이 걸린다.
그는 싸우러 가지 않았다. 갈 나이가 지났다 하였다. 그래서 여기 있었고, 여기서 겨울을 났다.
작년에 종자를 다 먹었다. 겨울에 먹을 것이 없어서 심을 것을 먹었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는가. 올해 심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그는 밭을 간다. 심을 것이 생길 때를 위해서. 없는 것을 기다리며 있는 것을 판다.
삽이 무엇에 걸렸다.
돌인 줄 알았다.
돌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엎드려 있었다. 갑옷 조각이 어깨에 걸려 있고 그 아래는 다 뜯겨 있었다.
그는 그 어깨를 잡고 돌렸다.
내 아들이었다.
작년 가을에 보냈다. 데려간 것이 아니라 갔다.
스무 해를 이 밭에서 키웠는데 사흘 만에 갔다. 그날 그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잘 다녀오라는 말도 못 했다.
그 말을 못 한 것이 겨울 내내 목에 걸려 있었다.
숨이 아직 붙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업었다.
가벼웠다.
스무 해 키운 것이 이렇게 가벼울 수가 없다.
밭은 그날 못 갈았다. 그다음 날도 못 갈았다. 사흘을 못 갈았다.
그래도 봄은 왔다.
사십 일을 누워 있었다.
처음 보름은 기억이 없다. 아버지가 업고 왔다 하였는데 그것도 기억이 없다. 어깨가 낫지를 않고, 비 오는 날은 뼈가 운다. 어머니가 매일 천을 삶으시고 그 김이 방에 찬다.
살아 돌아왔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살아 돌아온 것은 맞다. 그런데 무엇이 돌아온 것인지 그는 모른다.
품에 든 것이 있다. 무엇인지 모른다. 젖은 종이 한 벌인데 글자가 가득하고 그는 글을 모른다.
싸움이 끝난 날이었다.
천막 뒤에서 한 여인이 그를 불렀다. 글을 아는 여자였다. 죽는 사람 이름을 적던 여자였다. 그의 팔에도 적었었다.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 여인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기름천에 싸고 삼베로 다시 감은 것이었다.
"이것을 맡아주시오."
"나는 마흔넷이고 그대는 스물이오. 그것뿐이오."
"무엇이냐 묻지 마시오. 알면 무거워지오."
왜 나였느냐 물었다.
"그대가 오래 살 것 같아서."
그 말이 지금도 무섭다.
읽을 줄 알았으면 읽었을 것이다. 읽었으면 어떻게 했을지 그는 모른다.
못 읽어서 지켰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소금을 퍼신다. 큰 항아리다. 어깨까지 온다. 겨울 내내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살았다.
소금은 상하지 않는다. 소금 안에 든 것도 상하지 않는다.
어머니가 장에 가신 날, 그는 부엌에 들어갔다. 한 손으로는 아직 힘이 안 든다. 그래도 들어갔다.
소금을 반쯤 덜어냈다. 기름천을 밑에 놓았다. 그 위에 소금을 다시 덮었다. 뚜껑을 닫았다.
항아리를 원래 자리에 놓았는데 자리가 조금 틀어졌다. 그것을 바로 놓는 데 한참 걸렸다.
어머니가 아침마다 항아리를 옮기신다. 그 소리를 들으며 그는 안다. 아직 거기 있다.
육십 년이 지났다.
그는 여든이고 귀가 어둡다. 그래서 크게 여쭤야 한다.
손녀가 글을 배우러 다니는데, 훈장이 어른들한테 옛날 얘기를 여쭤보고 오라 하였다. 손녀에게는 할아버지밖에 없어서 할아버지한테 갔다.
"할아버지 젊었을 때 어땠어요."
그랬더니 소 얘기를 하신다. 소가 어땠고 밭이 어땠고, 비가 언제 왔고 언제 안 왔고.
"아니 그거 말고요. 전쟁이요, 전쟁."
그 말을 하니까 조용해지셨다. 한참 있다가 이러셨다.
"그때는 다들 갔다. 가라고 해서 간 게 아니라,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갔다. 스무 살이었다."
어깨를 보여주셨다. 여기가 아직 아프다고 하셨다. 비 오는 날은 뼈가 운다고 하셨다.
그 말이 웃겨서 손녀가 웃었더니 할아버지도 웃으셨다.
그런데 그다음 얘기를 하실 때는 목소리가 작아지셨다.
증조할아버지가 밭에서 업고 오셨다고 했다. 사십 일을 누워 계셨다고 했다. 처음 보름은 기억도 없으시다고 했다.
그러다 여자분 얘기가 나왔다. 글을 아는 여자였다고. 죽는 사람 이름을 적던 여자였다고. 그 여자가 무언가를 맡기셨다고.
"뭘 맡기셨는데요."
"종이."
"무슨 종이요."
"글자가 가득한 거."
"읽으셨어요."
"못 읽는다."
"그럼 누가 읽었어요."
"아무도."
"그럼 지금 어디 있어요."
할아버지가 한참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손녀는 못 들으신 줄 알고 다시 크게 여쭀다.
"할아버지, 그 종이 어디 있어요."
기억이 안 난다, 하셨다.
진짜 기억이 안 나신 건지, 기억나는데 그러신 건지, 손녀는 모른다.
한 번만 더 여쭤볼걸 그랬다. 그런데 그날 피곤하다고 하셔서 그냥 나왔다.
훈장한테는 그냥 소 얘기만 했다.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있었다는 것만 안다.
그거면 되는 건지 모르겠는데, 손녀는 지금 그 얘기를 또 하고 있다.
우리 할아버지가요.
스무 살에 전쟁에 나가셨는데요.
오백 년이 지났다.
그 밭은 이제 밭이 아니다. 집도 없고 부엌도 없다. 그러나 부엌 자리는 남았다.
바닥 아래 항아리 하나. 소금이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이 붓으로 흙을 쓸어낸다. 장갑을 끼고 있다. 숨을 참고 있다. 누군가 이리 와 보라고 부른다. 종이라고. 글자가 있다고.
한 사람이 손을 뻗는다. 그 손이 종이 위에서 멈춘다.
오백 년 전에도 손이 멈춘 자리다. 그때는 빈 손으로 뺐다. 그것이 옳았다.
오늘은 다르다. 이제 이 종이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이제 읽어도 된다.
그가 종이를 폈다. 읽었다. 읽을 수 있었다.
바다에서 올라온 이름들이었다. 십 년을 물이 지킨 것이었다. 관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거짓 증언을 산 자들의 이름이었다.
봉인은 뜯겼다.
오늘 드디어 뜯겼다.
이 이름들은 이미 늦었다. 그 여자가 그리 말하였다. 늦었다. 오백 년이 늦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지울 수 없다.
불은 태우고
소금은 지키고
쇠는 기억하고
사람은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