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금부 감옥에는 창이 없다.
그래서 윤제는 날짜를 세는 데 손톱을 썼다. 아침에 죽이 들어오면 벽에 금을 하나 그었다. 죽은 하루에 한 번 들어왔다. 금이 백 개가 되던 날, 그는 세는 것을 그만두려다가 그날치를 마저 그었다.
처음 한 달은 분했다. 자기가 쓴 문장을 하나하나 되짚으며, 어디를 다르게 썼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까를 생각했다. 두 달째는 슬펐다. 슬픈 것은 자기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었다. 저잣거리에서 죽은 사람들, 이름을 부르다 잡혀간 사람들.
백일째가 되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냥 고요했다.
창이 없어도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있었다. 제주의 수평선이었다. 그것은 끝이 없었다. 그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형이 집행되던 날 아침, 이슬이 유난히 맑았다.
끌려 나가면서 윤제는 형장 옆의 풀을 보았다. 파랬다. 봄이었다. 사형장의 풀도 봄을 아는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네 살 겨울에 아버지가 그의 손에 붓을 쥐어준 일이 떠올랐다. 손이 너무 작아서 붓이 손보다 컸다. 아버지가 말했다. 글을 쓰는 자는 왕보다 오래 산다고.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이제 안다.
왕은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왕도 언젠가 죽는다. 그의 글이 왕보다 하루라도 더 살면, 그가 이긴 것이다.
관원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할 말이 있느냐.
윤제가 답했다.
"내 목은 벨 수 있으나
백성의 입은 벨 수 없다."
후회가 있느냐고는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물었다면 없다고 답했을 것이다. 다만 아쉬움이 하나 있었다. 제주의 매화가 필 때, 바람에 꽃잎이 날리던 그 길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탈쇠는 한양을 등지고 남쪽으로 걸었다.
탈을 버렸다. 장구도 버렸다. 맨얼굴에 빈손으로 길 위에 섰을 때 그는 자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광대가 아니면 나는 무엇인가.
첫 마을에서 물 한 잔을 얻었다. 아낙이 물었다. 어디서 왔소.
"한양에서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다는데."
입을 열었더니 눈물이 먼저 나왔다. 탈쇠는 자기가 우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날 밤 그는 마을 사람들 앞에 앉아 그 이야기를 했다. 노래로 하지 않았다. 웃기지도 않았다. 그냥 있었던 대로 말했다. 사람들이 끝까지 들었다.
다음 마을에서도 그렇게 했다. 그다음 마을에서도.
경상도 어느 주막에서 농부 하나를 만났다.
"그 양반 압니다. 글 쓰던 분."
"아신다고요."
"제주에서 올라온 그 글, 읽었어요."
탈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 돌아가셨습니다."
농부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한참을 말이 없다가 말했다.
"그 글 기억합니다. 내 아들한테도 읽어줬어요."
그 순간 탈쇠는 알았다.
선비의 먹은 마르지 않았다. 자기 입을 통해 아직 흐르고 있었다.
이듬해 어느 고개에서 탈쇠는 젊은 사내 하나를 만났다.
제주 말씨를 썼다. 나이는 스물쯤이었다. 서로 어디로 가느냐 묻다가, 사내가 문득 물었다.
"혹시 그 노래 아시오. 같은 죄목이 세 번 적히면 어쩌고 하는."
탈쇠가 걸음을 멈췄다.
"그건 어디서 들었소."
"들은 게 아니오. 외운 것이오."
사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웠다. 한 자도 틀리지 않았다.
"누구에게 배웠소."
"그 어른이 배에 오르기 전날 밤에 읽어주셨소. 세 번 만에 외웠소. 그리고 그 종이는 태우셨소."
탈쇠는 그 자리에 앉았다. 사내도 앉았다.
"글을 쓸 줄 아시오."
"조금 아오."
"그러면 한 번만 써주시오. 나는 외우는 것은 하는데 쓰는 것은 못 하오."
사내가 종이를 폈다. 그날 저녁 내내 썼다. 다 쓰고 나서 탈쇠에게 건넸다.
탈쇠는 그것을 품에 넣었다. 그 뒤로 삼십 년을 품고 다녔다.
정안은 걸어서 속리산으로 돌아갔다.
내려갈 때와 올라올 때 같은 길인데 발이 달랐다. 무엇이 다른지는 한참 뒤에야 알았다.
승복에 연기 냄새가 배어 있었다. 세 번을 빨아도 남아 있었다. 네 번째에 정안은 그것을 놓아주었다. 냄새를 놓아준 것이 아니라 자기가 놓은 것이었다.
다시 목탁을 잡았다. 같은 목탁인데 소리가 달랐다.
전에는 분노를 덮으려고 쳤다. 지금은 그냥 쳤다.
봄이 왔다. 매화가 피었다.
이번에는 예뻤다. 어머니의 정원이 떠올랐으나 아프지 않았다. 그냥 떠올랐다. 여름 빗소리에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다. 듣고, 웃었다. 가을에 낙엽이 떨어졌다. 불이 아니라 그냥 낙엽이었다.
정안은 오래 궁금했던 것을 그해에 알았다.
분노를 놓는 게 아니었다. 분노를 다 태우는 거였다. 산 위에서 기도로는 다 탈 수 없었으므로, 산을 내려가서 횃불이 되어야 했다. 다 타고 나니 재만 남았다.
횃불을 들고 내려갔더니 돌아올 때 손이 비어 있었다. 빈 손이 그렇게 가벼운 줄 평생 몰랐다.
그해 겨울 어느 날, 산 아래에서 사람이 하나 올라왔다. 지팡이를 짚은 남자였다. 얼굴에 길이 새겨져 있었다.
정안이 차 한 잔을 건넸다. 둘은 말이 없었다. 말이 없어도 알았다. 우리는 같은 불에서 왔다.
남자가 떠나기 전에 물었다.
"법명이 무엇이오."
"정안이라 하오."
"고요하고 편안하다."
"그렇소."
정안이 처음으로, 그 이름이 자기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흘렀다.
탈쇠는 늙었다. 지팡이 없이는 걷지 못했고, 목소리는 갈라졌다. 그래도 마을에서 마을로 다녔다. 이야기를 하면 밥을 주었으므로 굶지는 않았다.
전라도의 작은 마을에 그가 들어선 것은 어느 여름 장날이었다.
느티나무 아래에 아이들이 모였다. 탈쇠는 늘 하던 대로 시작했다. 궁궐 이야기, 선비 이야기, 불 이야기, 먹 이야기. 아이들은 무서운 옛이야기인 줄 알고 들었다. 다 듣고 나서 깔깔 웃으며 흩어졌다.
한 아이만 남았다. 열 살쯤 된 계집아이였다.
"그거 진짜요?"
탈쇠가 그 아이를 보았다.
"어찌 그리 생각하느냐."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다가 한 번 목소리가 달라졌소."
탈쇠는 오래 그 아이를 보았다.
그 마을에 세 번째 왔을 때, 탈쇠는 자기가 다시 오지 못할 것을 알았다.
그는 그 아이를 찾았다. 아이는 이제 열둘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네가 이어가거라."
아이는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날 밤 탈쇠는 아이의 집에 들러 할머니를 만났다. 삼십 년을 품고 다닌 종이를 꺼내 상 위에 놓았다.
"나는 글을 모르오."
할머니가 말했다.
"저도 모르오. 그래서 맡기는 것이오."
"모르는 사람이 왜 맡소."
"읽을 줄 알면 읽고 싶어지오. 읽으면 말하고 싶어지고, 말하면 잡히오."
할머니가 그 종이를 천에 쌌다. 마루청 하나를 들어내고 그 밑에 넣었다.
그리고 사십 년 동안 아무도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분이는 전라도 논밭 사이에서 자랐다.
글을 배운 적이 없었다. 여자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쟁기를 쥐어줬지 붓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귀는 막을 수 없었다. 어릴 적 장터에서 들은 이야기 하나가 분이 안에 남아 있었다. 궁궐과 선비와 불과 먹에 대한 이야기. 다른 아이들은 옛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분이는 알았다. 그건 진짜였다.
열여섯 살 봄, 할머니 방을 치우다가 마루 밑에서 천에 싸인 것을 찾았다.
펼쳤더니 한지였다. 글씨가 있었다. 읽을 줄 몰랐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먹 냄새가 아직 남아 있었다. 사십 년이 지났는데 아직 남아 있었다.
마을 훈장에게 가져갔다. 훈장이 한참을 읽더니 눈물을 흘렸다.
"이것이 그 선비의 글이냐."
"모르오. 무어라 적혀 있소."
훈장이 읽어주었다. 분이는 끝까지 들었다.
다 듣고 나서 말했다.
"글을 가르쳐주십시오."
"여자는 안 된다."
분이는 그날부터 새벽마다 훈장 집 문 앞에 앉았다. 첫날은 아무 일도 없었다. 둘째 날도 그랬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문이 열렸다.
붓을 처음 잡던 날 손이 떨렸다.
먹을 갈고 한지 위에 첫 획을 그었다. 삐뚤어졌다.
그래도 글자였다.
선비는 죽었지만 붓은 거기 있었다. 광대는 사라졌지만 이야기는 거기 있었다. 스님은 산으로 돌아갔지만 불씨는 거기 있었다.
마루 밑에서. 그리고 분이의 손 안에서.
분이가 몇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는지는 기록에 없다. 다만 그로부터 한 세대 뒤, 나라의 남녘 끝에서 또 한 명의 선비가 진실을 썼다는 죄로 유배를 떠났고, 그가 도착한 곳은 바다였다.
그리고 바다는, 육지와 달리, 아무것도 지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