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걷던 길을 걷고 있어
발 아래 돌, 안개 속 귀신
왕조의 먼지 내 혀 위에
먹 붓 떨어져, 내 교서를 직접 써
전하는 무릎 꿇지 않아, 나도 안 꿇어
한양 밤, 기와 사이로 달이 번져
사헌부 눈빛 아래 선비들 숨어
과거시험 답안지처럼 내 가사를 펼쳐
삼강오륜 위에 내 법도를 세워
장구가 내 심장 박자, 한 번도 안 어긋려
궁궐이든 골목이든 같은 짓거리로
얼씨구 — 뼛속까지 느껴져
경복궁에서 종로 골목까지 난 혼자가 아니었어
왕의 길을 걷고 있어, 산 위에 안개
한 걸음이 하나의 왕조, 한 숨이 샘물
달빛으로 만든 왕관, 소리로 만든 검
조선이 내 혈관에, 이 땅을 지켜 선다
한복 뒤집어, 비단 아래 갑옷
혀는 검도처럼, 흐름은 비단처럼
사대문 밖으로 나를 막으려 했지
그 위에 이름 새겼어 — 이제 그게 역사
태평소가 내 입 대신 비명을 질러
오백 년 불이 오늘 하루에 응축돼
상소문처럼 한 글자도 허투루 안 써
붉은 도장 — 어명이다, 물러서라
산줄기 위에 불씨를 피워
무당을 불러, 다리를 건너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해질녘과 새벽 사이
침묵과 노래 사이
홍익인간의 뜻을 품고
왕의 길을 걷고 있어, 산 위에 안개
한 걸음이 하나의 왕조, 한 숨이 샘물
달빛으로 만든 왕관, 소리로 만든 검
조선이 내 혈관에, 이 땅을 지켜 선다
발 아래 돌
안개 속 귀신
길은 기억해
우리가 잊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