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male — singing, distant, like a memory)
바람이 불어와
빈 궁궐을 채우던 목소리
이제는 메아리뿐
경복궁 깊은 밤, 촛불 하나 앞에 앉아
어좌 위에 앉아도 옆자리는 비어있다
단종의 슬픔을 이제야 알겠어
왕관이 무거운 게 아니라 가슴이 무거워
승정원 일기에도 기록 못 할 이 마음
어의를 불러도 이 병은 약이 없다
궁녀들 발소리만 복도에 울려 퍼져
그 발소리 속에 네 걸음을 찾고 있어
전하, 놓아주소서
달빛이 차가워지옵니다
전하, 놓아주소서
옥좌가 얼어붙고 있사옵니다
(Female singing, Male ad-libs)
얼어붙은 옥좌 위에 홀로 앉아
만 백성의 아버지가 한 여인의 아이
눈이 내려 덮어도 네 자리만 녹지 않아
천년을 다스려도 네 손은 못 잡겠다
현덕왕후처럼 떠나버렸어, 말도 없이
세종도 며느리 잃고 글자 속에 숨었지
나는 글자도 없어, 소리만 남았어
태평관 잔치 위에 눈물을 삼킨다
사약을 내려도 이 아픔은 안 죽어
폐비 윤씨의 한이 내 안에 다시 살아
종묘 제례악이 울려도 네 목소리뿐
빈전에 향을 피워, 매일 밤 너를 부른다
(Male — broken, half-spoken)
왕이 되지 말걸
그냥 사대부의 아들로 태어날걸
네 손 잡고 광통교 아래 걸을걸
연꽃 피는 계절에 네 이름 부를걸
(Female — overlapping, ethereal)
저승길에도 꽃은 피옵니다
전하, 울지 마소서
(Both voices together)
얼어붙은 옥좌 위에 홀로 앉아
만 백성의 아버지가 한 여인의 아이
눈이 내려 덮어도 네 자리만 녹지 않아
천년을 다스려도 네 손은 못 잡겠다
(Female — whispered, disappearing)
바람이 불어와
전하
놓아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