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d)
사초를 가져와라
이름을 대라
온화한 왕은 죽었다, 오늘부터 폭군이다
자선당 마루에 피가 마르기 전에 다음 이름을 불러
갑자사화가 뭔지 알려줄까
내 여자를 죽인 놈들의 삼족을 멸한다
대간들 목이 달아나도 상소를 올려?
그 상소 위에 내 도장 대신 피를 찍어
의정부 영의정이 무릎 꿇어도 부족해
네 아버지, 네 아들까지 끌고 와
피의 옥새를 찍는다
용서는 없다, 자비도 없다
피의 옥새를 찍는다
조선이 피로 물들어도 멈추지 않는다
연산군이 미쳤다고? 이유가 있었어
어머니 폐비 윤씨, 사약 받던 그 날
그 독이 아들에게 흘러들어온 거야
피는 기억해, 왕실의 피는 절대 잊지 않아
수양대군도 조카를 죽일 때 울었을까
눈물 닦고 옥좌에 앉으면 그게 왕이야
인수대비처럼 웃으면서 칼을 갈아
궁궐 안에서는 가족이 가장 위험해
(half-spoken, breaking down)
승정원, 기록해라
오늘부터의 기록은
왕이 직접 쓴다
실록을 고쳐라
내가 원하는 역사를 써라
(laugh — silence)
관을 열어, 네가 죽인 내 사랑의 얼굴을 봐라
그 얼굴 기억하면서 지옥에 가라
노산군의 한? 내 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냐
조선 오백 년 피의 역사 위에 내가 서 있다
왕의 길을 걸었더니 여기까지 왔다
빈 궁궐의 메아리가 비명으로 바뀌었다
도깨비불이 횃불이 되어 궁궐을 태운다
피의 옥새 — 이것이 내 마지막 교서다
(whispered)
...조용하구나
드디어 조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