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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씨앗 · TRACK 1

마지막 붓

THE LAST BRU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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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이슬이 유난히 맑다
사형장의 풀도 봄을 아는구나

의금부 감옥에서 백일을 세었다
벽에 손톱으로 날짜를 긁었다
처음엔 분했다 그 다음엔 슬펐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고요하다
창 없는 방에 빛이 들지 않아도
눈을 감으면 제주 바다가 보인다
유배지에서 보던 그 수평선
끝이 없었다 내 글처럼

오늘이 마지막이라 한다
좋다
마지막이라서 할 수 있는 말이 있다

나를 죽여라
그러나 내 글은 이미 떠났다
이 목을 베어라
그러나 백성의 입을 벨 수는 없다
붓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먹은 이미 스며들었다
종이 위가 아니라
천 개의 가슴속에

아버지가 내게 붓을 쥐어줬다
네 살 겨울 손이 너무 작아서
붓이 손보다 컸다
아버지가 말했다 글을 쓰는 자는
왕보다 오래 산다고
그때는 몰랐다 그 말의 무게를
지금 이 감옥에서 비로소 안다
왕은 나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왕도 언젠가 죽는다
내 글이 왕보다 하루라도 더 살면
내가 이긴 것이다

후회가 있냐고 묻는다면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나를 죽여라
그러나 내 글은 이미 떠났다
이 목을 베어라
그러나 백성의 입을 벨 수는 없다
붓은 여기서 끝난다
그러나 먹은 이미 스며들었다
종이 위가 아니라
천 개의 가슴속에

아쉬운 건 이것이다
봄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제주의 매화가 필 때
바람에 꽃잎이 날리던 그 길
유배지였지만 아름다웠다
감옥에서 알았다
자유로울 때 나는 자유를 몰랐다
붓을 쥘 수 있을 때 붓의 무게를 몰랐다
이제 둘 다 없으니 둘 다 보인다

나를 죽여라
이것이 내 마지막 글이다
이 목을 베어라
이것이 내 마지막 붓이다
그러나 들어라 왕이여
재 속에서 싹이 틀 것이다
네가 태운 종이 위에
새로운 글씨가 피어날 것이다

붓을 놓는다
먹이 마른다
그러나 글은
글은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