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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와 씨앗 · TRACK 2

길 위의 그림자

SHADOW ON THE ROAD

앨범 재와 씨앗 · 2번 트랙  ·  이 장의 이야기 읽기 →

장터는 불탔다
포졸들이 왔을 때 나만 빠져나왔다
왜 나였을까

한양을 등지고 남쪽으로 걸었다
탈을 버렸다 장구도 버렸다
맨얼굴에 빈손으로 길 위에 섰다
광대가 아니면 나는 누구인가
첫 마을에서 물 한 잔을 얻었다
아낙네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한양에서요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입을 열었더니 눈물이 먼저 나왔다

그날 밤을 말해야 한다
누군가는 기억해야 하니까
선비는 죽었다
그의 글은 내 입에 남았다

나는 걷는다 마을에서 마을로
그림자 하나 데리고 걷는다
나는 말한다 사람에서 사람에게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대는 죽었다
이야기꾼이 태어났다
웃음은 사라졌다
진실이 그 자리에 앉았다

경상도 주막에서 농부를 만났다
그 양반 알아요 글 쓰던 분
제주도에서 올라온 그 글 읽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 돌아가셨습니다
농부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한참을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 글 기억합니다
내 아들한테도 읽어줬습니다
그 순간 알았다
선비의 먹은 마르지 않았다
내 입을 통해 아직 흐르고 있었다

속리산을 지날 때 산사가 보였다
스님이 내려와 차 한 잔을 건넸다
삭발한 머리 위로 눈이 내렸다
말없이 웃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봤다

나는 걷는다 마을에서 마을로
그림자 하나 데리고 걷는다
나는 말한다 사람에서 사람에게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광대는 죽었다
이야기꾼이 태어났다
웃음은 사라졌다
진실이 그 자리에 앉았다

가끔 밤에 혼자 불을 피우고 앉으면
선비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가 못 죽이는 건 생각이다"
그리고 장터의 함성이 들린다
"저잣거리 저잣거리"
그 소리가 아직 귀에 울린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게 축복인지 벌인지 아직 모르겠다
다만 걷는다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걷는다 마을에서 마을로
이 길이 끝나도 이야기는 남는다
나는 말한다 사람에서 사람에게
씨앗처럼 한 명씩 심어간다
광대는 죽었다
이야기꾼도 언젠간 죽는다
그러나 이야기는
이야기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길은 끝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