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없는 밤이 제일 좋은 밤이다
달이 구름 뒤로 숨는 밤
검은 돛을 올리고 노를 젓는다
포구의 등불은 등 뒤에 두고
뱃머리는 별 하나만 바라본다
수군의 관선은 코를 골고
세상이 잠들 때 나는 깨어난다
소금 한 섬 비단 한 필
그리고 이름 없는 서찰 한 통
검은 돛 검은 돛
바다는 묻지 않는다
검은 돛 검은 돛
파도는 말하지 않는다
섬과 섬 사이
나만 아는 물길로
검은 돛 검은 돛
새벽이 오기 전에
나라가 막은 것을 바다가 잇고
법이 끊은 길을 물길이 잇는다
육지의 저울은 양반 편이지만
바다의 저울은 배짱 편이다
금지된 서책도 실어 나른다
글자가 뭐라고 목숨을 걸까만
뭍에서 온 선비 하나가 그랬지
먹은 마르지 않는다고
오늘 밤 뱃길에 소문이 떠돈다
북쪽 여울에 배 한 척 가라앉았다고
관의 문서를 실은 배였다고
바다 밑에 진실이 잠들어 있다고
나는 듣고도 못 들은 척한다
아는 것이 많으면 오래 못 사니
그래도 뱃머리가 자꾸 북쪽으로 도는 건
바람 탓이라 해두자
검은 돛 검은 돛
바다는 묻지 않는다
검은 돛 검은 돛
파도는 말하지 않는다
섬과 섬 사이
나만 아는 물길로
검은 돛 검은 돛
새벽이 오기 전에
바다는 다 안다
말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