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지나간 다음 날
바다가 너무 조용했다
그런 고요는 공짜가 아니다
물길을 살피러 새벽에 나갔다
폭풍이 바꿔놓은 바다를 읽어야 하니
여울의 모래가 자리를 옮겼고
낯익은 바위가 낯선 곳에 서 있다
그리고 보았다 썰물의 끝에서
물 위로 솟은 검은 뱃머리 하나
십 년을 소문으로만 듣던 그 배가
거기 있었다 나를 기다린 것처럼
가라앉은 배 가라앉은 배
바다가 뱉어낸 비밀
가라앉은 배 가라앉은 배
모르는 척은 여기까지다
노를 저어 가까이 다가갔다
심장이 장구보다 빠르게 뛰었다
갈라진 뱃전에 관의 낙인이 있고
부러진 돛대에 해초가 자란다
십 년 전 그 밤 이 배가 가라앉을 때
늙은 어부의 아들도 그 물에 있었다
그 노인이 폭풍 속에서 빌었다지
돌려줄 것이 있으면 돌려달라고
바다가 대답한 것이다
이 뱃머리가 그 대답이다
가라앉은 배 가라앉은 배
바다가 뱉어낸 비밀
가라앉은 배 가라앉은 배
모르는 척은 여기까지다
평생을 모르는 척하며 살았다
아는 것이 많으면 오래 못 사니까
그런데 왜 노가 멈추지 않는가
왜 뱃머리가 자꾸 그리로 도는가
저 밑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안다
관의 문서 그리고 사람의 뼈
나는 잠수를 못 한다 뭍의 사내니까
그러나 물질하는 처녀 하나를 안다
숨비소리가 유난히 맑은 처녀
바다 밑을 제 마당처럼 아는 처녀
선비에게 말할 것이다
글을 아는 자가 판단할 일이니
해녀에게 부탁할 것이다
물을 아는 자가 내려갈 일이니
나는 배를 젓겠다
그것이 내가 아는 전부니까
가라앉은 배 가라앉은 배
바다가 뱉어낸 비밀
가라앉은 배 가라앉은 배
모르는 척은 끝났다
십 년을 바람 탓이라 했다
오늘부터는 바람 탓을 못 한다
뱃머리가 북쪽을 보고 있다
내가 그리로 저은 것이다